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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_현낭사/에세이

에세이_올 봄에 하고 싶은 일

 

올 봄에 하고 싶은 일_꽃보다 사랑스러운 그대와

 

 해 질 녘 무르팍이나 팔꿈치 하나씩은 깨 먹고 집으로 돌아오던 내가 어느덧 29살이 되었다. 코흘리개 꼬맹이에서 벗어나 교복 입고 속썩이던 청소년, 대학 갔다고 어른인 척하던 20대를 다 보내고 나니 30살을 1년 앞둔 29.2세 직장인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어린 나이일 수도, 누군가에겐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이 멀어 보이는 나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엄마에게 나는 늘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위태롭고 걱정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인생에 있어 시기마다 엄마와 같이 거닐지 못했던 이유는 많았다. 청소년기는 공부를 방패 삼아, 20대는 취업을 방패 삼아 엄마 옆에서 같이 거닐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같이 거닐 생각이 없었을 수 있겠지? 철마다 산으로 바다로 들로 친구들과, 사랑하는 연인들과 다녔던 기억이 머릿속에 가득한데 엄마와 손잡고 나란히 어디론가 떠나본 기억은 하나도 없다. 지금보다 조금은 어렸던 시기엔 관광지나 유명하다는 곳을 가면 손 꼭 잡고 사랑하는 연인과 온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요즘은 데면데면 멀찍이 떨어져 관광하더라도 가족끼리 온 사람들이 더 질투 나는 나이가 되었다.

 

 29살의 우리 엄마의 뱃속엔 내가 있었다. 하지만 29살의 지금 나는 엄마와 멀리 떨어져 지낸다. 29살 우리 엄마에겐 내가 전부였겠지만 29살의 나에겐 엄마가 전부는 아니다. 너무나도 불공평한 사이 같지만 29살의 우리 미자 씨도 그랬기에 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남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꽃다발의 싱그러움을 나만 보고 말리기 아까워 슬그머니 본가로 들고 가 태연하게 미자 씨에게 선물했다. ‘이게 뭐야?’ 조금은 놀란 눈을 한 미자 씨가 나에게 물었고 선물이야, 나 아니면 또 누가 엄마한테 꽃 선물해주겠어?’라고 너스레를 떨어봤다. 그 순간 아 우리 엄마도 여자였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이 감성의 메마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구나 조금은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코로나라는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전염병이 전국, 아니 전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번 꽃피는 봄에는 우리 엄마 손 꼭 잡고, 아니 엄마라는 명찰을 단 여자가 아니라 우리 미자 씨 예쁜 옷 입혀서, 내 차 옆자리에 태워서 봄꽃 보러 가고 싶다. 낯간지럽고 어색한 하루가 될 수 있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구나 하고 기억될 그 하루를 만들러 가고 싶다.

 

 봄꽃이 예쁘게 흩날리는 기간은 참 짧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와 보낼 수 있는 남은 시간은 더 짧다. 내년이 있잖아, 다음에 가면 되지 라는 미래 지향적인 생각 때문에 미자 씨가 없는 내 미래를 전부 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 사랑

스러운 그녀와 나는 올봄 꽃을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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